원래 산이라면 질색을 하는 나 이지만..
제주에 간김에 한라산을 올라보기로 마음 먹었다.
기왕이면 백록담을 보고자 성판악~관음사 코스를 예정에 두고 있었으나 내 체력을 믿을 수 없어 고민되던 차에..
민박집 사장님 추천으로 영실~어리목 코스로 급변경하게 되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지만.. 황사가 가장 심한날이 걸리고 말았다.
9시 반에 매표소에 도착했으나.. 등산로 입구까지 2.5km
저질체력은 이런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경사가 그리 심한것도 아닌데 주로 평지만 걷던 올레길에 비하면 2.5km는 너무도 힘겨운 길이었다.
09:42
차들이 슝슝 지나가고 그나마 앞서 걷던 두아가씨도 어느새 사라지고 나홀로 헉헉대며 걷는다.
기분나쁘게 까마귀만 계속 눈에 띈다.
09:46 09:53
10:06 10:10
그 풍경이 그풍경이라 더이상 찍을건 없고 시간과 위치를 남기기 위해 이런것만 찍어댄다
10:15
드디어 영실휴게소 도착.. 고작 2.5km 오는데 45분이 걸리다뉘~ ㅠㅠ
이 속도대로라면 입.하산 시간도 문제가 될 수 있으니 기록으로 남겨두고..
윗세오름까지 화장실이 없다고 하니 화장실 한번 들려주고..
황사때문에 코가 따끔거리는데 바람도 안부는 한라산에서 멀티스카프로 목과 얼굴을 감싸고 있노라니 질식해 죽을 판이다.
산책하는 아줌마들이 즐겨쓰는 마스크를 팔길래 거금 만원을 주고 썼는데..
나중에 보니 이건 너무 구멍이 슝슝 뚫린게 아닌가~ 황사는 커녕 모래도 들어오겠다..
날벌레 차단용인게얏??
조난 당하면 이 전화번호와 위치가 꽤나 유용하겠군~
10:35 이제 겨우 0.5km~
날씨는 초여름 날씨이거늘.. 나무는 앙상하고.. 꽃도 엄꼬.. 물도 메마르고.. 좀 삭막해보인다.
그나마 푸른빛을 물이끼에서 봐야하다뉘~
10:50
길은 점점 가파라지고.. 벌써 하산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일찍도 출발하셨나보다.
10:53 해발 1400M
병풍바위~
안그래도 바위라 수묵화 같은데 황사까지 끼어서 넘 뿌엏다.
11:00
이제 제법 많이 올라왔는지 멀리까지 내려다 보인다.
화창하게 맑았으면 너무 좋았을텐데~
얘네들은 언제쯤 파릇파릇 해질려나~ 보기만 해도 따가워~
11:15 해발 1500M
이런게 희망고문인가보다..
끝이 보여 오르면 또 저만치 달아나 있다..
11:25 1.5km
잠시 쉬어가는 곳..
까마귀가 이야기라도 들려주고 있는 분위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끝없는 길~ 나~그네길~
겨울에 눈이 쌓이면 예뻐보일 듯한 나무..
올라갈 수록 나무의 종류가 달라진다.
하얀 나무~
12:00
드디어 남벽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름 평탄해진 길을 따라~
여름에 오면 파릇파릇하려나~ 아직도 겨울이다~
노루샘을 지나니~
12:18
드디어 윗세오름에 도착..
수학여행을 온 듯한 남학생 한무리가 한켠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도시락으로 식사중인 중년 부부도 곳곳에 눈에 띄고,
어딜가나 빠지지 않는 아줌마 관광객 무리까지 발디딜팀 없이 바글댄다.
해발 1700M
한라봉만 까먹으며 오르니 넘 허기진다. 먹을 수 있는건 육개장 사발면뿐~
사발면이 이렇게 맛있을수가~
커피한잔을 하며 한숨 돌린 후 화장실 함 들려주고~
화장실이 뻥 뚫려있어서 깜놀~
12:55
보통은 윗세오름에서 밥먹고 내려간다고들 하는데, 남벽분기점까지 꼭 댕겨오라는 민박집 사장님의 코치대로~
남벽분기점을 향해 얼마가지 않아 나타난 저...저..건... 눈이야??
5월에 밟고 있는 눈이 참 신기하군.. 한라산이 높긴 높은게야~
와우~ 눈밭이다~
여기까지 혼자 왔느냐며~ 신기해하고 대견해하시던 아주머니~
저쪽이 길이라며 손짓해주시는 쪽으로 길을따라 가다보니 어머~ 생각보다 머네...
게다가 내리막이다.. 갔다간 돌아올게 걱정이라 발길을 돌렸다..
라디오를 들으며 마주오시던 아저씨가.. 이쪽은 돈네코 방향이라고 알려주셨다..
클날뻔했네~
다시 눈밭으로 돌아와 이리저리 밟아도 보고 만져도 보고..
사진찍어 이리저리 멀티메일도 쏴주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걸까.. 발자국을 따라가다보니 발자국도 끊기고.. 이젠 눈이라기보다 빙판이다..
뒤에 따라오시는 저분들은 어디까지 가려나 지켜봤지만.. 되돌아 오는 날 봐서였을까.. 역시나 더 진행을 안하셨다.
여기가 끝인것 같긴한데.. 표지판이라도 있어야할텐데.. 없는걸 보니 좀 더 갈 수 있는것 같기도 하지만.. 길이 미끄러워 포기..
비록 백록담은 못봤지만... 이정도 봤음 됐다~ 눈이라기보단 얼음 갈아놓은듯한... 갑자기 팥빙수가 먹고 싶다~
13:30
라면 좀 얻어 먹겠다고 몰려든 비둘기떼.. 까마귀떼들.. 어리목코스로 하산 시작~
앞서가던 일본인 관광객..
뒤에서 사진찍으며 오늘 날 보더니 걸음을 늦춰 먼저가라는 손짓과 미소를 날려준다~
계속 누런빛의 풍경이 지겨워 또다시 카메라 장난질~
만세동산 전망대..
다른 관광지엔 500원을 넣어야 볼 수 있는 망원경이 이곳은 그냥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산을 하다보니 발이 앞으로 쏠려 발가락이 아푸다.
발목을 단단히 조이기 위해 쭈구려 앉아 끈을 다시 묶는 사이 일본인 부부가 다시 앞서간다~
앞도 뒤도 사람은 없고 까마귀 퍼득대는 음산한 나무.. 나란 뇨자~ 이걸 또 더 음산하게 찍고 앉아 있다.
내리막이다 보니 발밑을 계속 보고 내려오느라 별로 찍은것도 없이 어느새 거의 다 내려온 모양이다.
한라산에 오른지 5시간여 만에 첨 발견한 꽃이다~
이곳은 가을 분위기네~
시계를 보니 3시 20분이다. 34분 버스를 놓치면 한시간을 기다려야하니 서둘러 뛰기 걷기 시작한다.
15:27 어리목 등산로 입구 도착!!
버스 타는 곳을 찾아보니 엄따~ 지도를 보니 한참 저 밑에~
이젠 4분밖에 안남은 상황...
코앞에 화장실은 있고, 내려갔다 못타면 화장실도 못가고 한시간을 기다려야하는...
입구 안내소?에 사람이 있길래 버스타는 곳을 물어봤더니 이제 곧 출발할 시간이라 못탈것 같단다.
이길이 끝도 아니지만, 여기서 저 끝까지 뛰어도 4분엔 못가~ 내 다리가 뛰어도 뛰는게 아닐거거든 ㅋ
쿨하게 포기하고 화장실 들러주고, 커피하나 뽑아 마시고 어슬렁 거리며 내려간다.
이젠 사진 찍을 기력이 엄써요~
이렇게 이렇게.. 긴 것 같았던 제주도 일정도 고새 끝이 났다.
뻐근하던 다리는 서울올라온지 하루만에 다 풀리고.. 어느새 열흘이 넘게 지나고서야 포스팅도 끝나고..
사진보며.. 새록 새록 기억을 떠올리다보니.. 또가고 싶다~
그리하야~ 가을에 다시 한번 떠나기로 굳게 마음 먹어본다~
계획에 넣었다가 못간 6코스, 이번 일정에서 제외했던 9코스, 역주행하다 포기한 10코스,
다시 가고픈 가파도, 못가본 중문관광단지와 가을이 궁금한 천제연폭포...
바다와섬에 풀로 묵으며 충분히 일정 소화는 가능할듯 하고..
또 일주일은 족히 필요하겠다...
휴가내서 가려면.. 그때까지 또 열씨미 일해둬야겠군~